어머니와 함께 떠난 미국 여행 1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일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족과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오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생을 했음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은 그것이 참으로 뿌듯한 일이라고 인식해서 그렇다. 2014년 여름, 미국에서 살고 계시는 고모님께서 어머니께 미국으로 놀러 오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 이후로 어머니께서 미국에 가고 싶으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일 때문에 바쁘셔서 안되었고 할머니께서는 힘드셔서 안 가신다고 하셔서 어머니와 나 이렇게 둘이서 미국 여행을 가게 되었다.

기왕 미국에 여행 가는 것인데 고모네 집만 가면 뭔가 아쉬울 것 같아서 보름의 시간을 잡고 뉴욕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고 캐나다도 넘어 갔다 오자는 생각에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는 기차표도 찾아보는 등 몇가지의 계획을 세워놓고 움직였다. 그렇게 스케줄을 늘이다 보니 여행 비용을 최대한 아끼면서 여행을 해야 했기에 당시 왕복 비행기 중에 가장 저렴한 표를 구했는데 대만의 에바항공사 비행기였다. 저렴한 대신에 타이베이 항공을 경유하는데 공항에서 긴 시간 체류해야 하는 비행편이라 공항 도착해서는 편하기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니 밤 9시경이었다. 스케줄을 좀 빡빡하게 잡았더니 미리 예약한 인근의 호텔에서 간단히 씻기만 하고 바로 나와서 움직여야 했기에 바로 통근기차를 타러 갔는데, 티켓을 예매하지 않아서 그곳에서 티켓을 구매하여야 했다. 문제는 티켓 판매소를 바로 찾지 못해서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는 것이다. 밤이고 뉴욕에서도 외진 곳이라 어둡고 사람들도 없어서 음산한 느낌마져 들었고 어머니께서는 이전에 보았던 영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 생각난다면서 호들갑을 떠셨다. 무슨 영화인지 몰라서 여쭤보니 열차와 관련된 호러 영화라고 하셨다. 일전에 이모와 사촌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셨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무서워서 잠을 설치실 정도였다고 하니 무서운 영화인가보다 싶었다. 아무튼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기차를 잘 탈 수 있었고 뉴욕 맨하튼에 있는 펜실베니아 스테이션 부근에 도착하였다. 그래도 뉴욕에 도착하니 야경이 꽤 멋졌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께서 미국 여행이 이번이 처음이셨기 때문에 소녀같이 흥분하고 좋아하셨다. 배고 고프고 해서 근처의 술집을 찾아 들어가서 배를 채울 요리와 맥주를 시켰는데 그 술집 분위기가 뉴욕의 핫플레이스의 술집이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어머니께서도 매우 만족해 하시면서 영화 안에 들어와 있는거 같다며 좋아하셨다.

그 후에 펜실베니아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구매하고 기차를 기다렸는데 새벽 일찍 출발하는 기차편이라서 한참을 역사 내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 당시 여름이 막 끝난 시점인 9월 초여서 밖은 꽤 더웠는데도 불구하고 역사 안쪽 대기실은 에어컨을 얼마나 쎄게 틀어났는지 추워서 가지고 있던 짐에서 옷을 바리바리 꺼내서 덮어야 했다. 그리고 역사 안에 있는 화장실은 역시나 악취와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 한국의 화장실이 그리워 졌다. 어머니께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청결하지 못할 줄 생각을 못하셨는지 화장실을 사용하시더니 너무 더럽다면서 문화충격을 받으신거 같았다. 그리고 기차 여행을 하기 위해서 편의점에 들려 과자와 육포를 구매하였는데 과자가 너무 커서 그걸 본 어머니께서 놀라셨다. 그리고 그 과자 봉지를 열었을때 공기가 거의 없이 과자로 꽉 차 있다는 사실에 또 놀라셨다. 이 또한 문화충격이라고 하셨다. 아무튼 그렇게 기차가 출발하였고 우리는 캐나다 쪽의 나이아가라 역을 향해서 이동하였다. 기차에 타고 뜻밖의 일을 겪었는데 기차가 꽤 빠르게 간다고 느끼고 있었음에도 갈메기가 기차를 쫓아서 날더니 우리가 창밖을 보고 있는 동안 우리를 한번 쳐다보더니 기차보다도 빠르게 날아서 앞으로 가더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갈메기가 빠르다는 것에 놀랐다. 어머니도 그것을 보고 갈메기가 약을 올린다면서 재밌는 구경 했다고 좋아하셨다. 캐나다 국경을 넘어가고서는 바로 캐나다 입국 심사를 했는데 생각보다 절차가 간단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는 않았다. 그렇게 캐나다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역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우리가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바로 앞이 나이아가라 폭포와 만나는 강이어서 폭포의 물 소리가 다 들리고 강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매우 추웠다.

그렇게 도착하고 나서는 버스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마주한 자연의 위대함은 아직까지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도착하고 나서 마주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폭포에 압도되어 그 소리와 경치, 그리고 폭포로 인해서 비가 오는 것 같이 물을 얻어맞고 있는 것들 모두가 하나의 경험과 추억으로 아로새겨졌다. 아무리 카메라를 좋은 것을 쓰더라도 그 모든것을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 두 눈에 그 것을 담고 소리를 귀에 담고 바람을 느끼려고 하였다. 문제는 춥기도 무척이나 추운데 우산도 없고 비옷도 없었기에 옷이 젖어서 매우 추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지는 못하고 바로 버스를 타고 식사를 하러 움직여야 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관광명소라서 그런지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은 미국과 별다른 차이점을 못느꼈고 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였다. 그렇다고 가격이 싸지는 않았다. 관광지가 늘 그렇듯이 말이다. 그래도 맥주와 고기, 파스타 등을 먹으면서 열량을 채우니 추위도 가시고 만족스러웠다. 그날은 그렇게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의 상점 거리에서 식사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하루를 알차게 채우고 숙소로 돌아왔다. 문제는 자는데 추워서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 옷을 바리바리 껴입고 자야 했다. 아마 겨울에 캐나다를 오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와야 할 것이다. 다음날에는 아침을 먹으러 아침식사를 주로 파는 레스토랑에 갔는데 그곳은 시가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현지인들이 주로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매우 저렴한 가격에 아침을 먹을 수 있었는데 계란, 햄, 소세지, 빵, 감자튀김 등 주로 미국식 아침이라고 생각되는 비주얼의 아침 식사였다. 그곳에서는 먹다가 부족하면 얼마든지 리필을 해준다고 하였는데 솔직히 1인분의 식사가 너무 많아서 주어진 것을 다 먹기에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의 노부인 부부가 식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분들은 그 식사가 부족했는지 감자튀김을 계속 리필해서 드셨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그날도 폭포도 구경하고 버스 타고 좀 더 많이 이동해서 대형마트도 경험해보는 등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가 이날은 다른 호텔로 예약해서 그곳으로 짐을 옮겼다. 다음날 아침은 그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는데 그날 기차를 타고 다시 미국으로 갈 예정이라서 조식을 먹다가 도너츠 등을 몇개 싸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뉴욕을 거쳐 워싱턴을 향해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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